국가가 조작한 ‘재일 교포 간첩’으로 살아야 했던 세월,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고자 거듭 기억해 남긴 한 인간의 기록 “그는 초라하리만치 참 자그마한 체구였다. 어눌한 한국말이었지만, 차분하고 담담하게 과거를 밝히는 무척 꼼꼼한 ‘간첩’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만났다.” - 조영선(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우리 태홍이는 언제 돌아오나요? 내가 살아 있을 때 돌아올 수 있을까요?” - 고 심복수(김태홍의 어머니) 청년은 납치되었다. 대문 안쪽 하숙집 사람도, 5분 거리 학교 강의실에서 막 수업을 시작했을 교수와 동료 학생도, 저 멀리 일본에 있는 가족도, 아무도 청년이 납치된 사실을 몰랐다. 청년 자신도 납치인 줄 몰랐다. 친구 일로 잠시 물어볼 게 있다는 말에 ‘잠깐이면 되겠지’ 하고 따라나선 길이었다. 한 달여 뒤부터 모든 신문이 청년을 간첩으로 대서특필하기까지 청년은 현실에서 증발했다. 그날 낮 3시를 채우던 공기가, 하숙집 대문과 담벼락이,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 나왔던 골목길이 청년을 목격했을까. 죄 없이 15년을 교도소에 갇힐 스물다섯 살 청년 김태홍의 운명을 예감했을까.
추천사 6
작가의 말 15
프롤로그. 모국으로 19
1장. 국군 보안사령부에서(1981년 9월 9일~10월 25일) 37
2장. 서울구치소에서(1981년 10월 26일~1983년 5월 24일) 45
3장. 광주교도소에서(1983년 5월 25일~1989년 5월 15일) 69
4장. 대구교도소에서(1989년 5월 16일~1992년 7월 9일) 193
5장. 대전교도소에서(1992년 7월 10일~1996년 8월 14일) 247
에필로그. 집으로 275
후기. 나는 기다림에 지지 않는다 281
부록. 조국이 만든 간첩, 김태홍 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