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날』은 추억으로 가는 문이다. 이미 사라졌고, 잊힌 풍경이라 여겼는데, 벽돌 벽이 문으로 변하는 마법처럼, 사진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다. 정지된 것 같은 평면 안에서 이야기가 솔솔 새어 나온다. … 그 무엇보다 장터에 많았던 것은 물건이나 다른 짐승들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벙거지 모자를 쓰고 막걸리집에서 환하게 웃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짐을 다 싣고 장터로 들어서는 구루마도 있었다. 그렇게 구루마를 끌고 온 소에게 막걸리를 먹이고, 낙지를 먹이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곳도 장터였다. 장을 보러 온 사람 중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지만, 물건을 사거나 파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특히 노점에 앉아 물건을 파는 이들은 거의 전부가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의 손은 새카맸고, 주름이 많았으며, 갈라진 데가 많았다. 즉 장터는 어머니들의 삶의 터였고, 그녀들의 생활력이 살아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