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풍자의 질펀한 놀이판 위에서 종횡무진 펼쳐지는 어느 노교수의 진솔한 삶과 깨달음, 역사에 관한 이야기 알라딘이 등잔을 닦으면 지니가 나타나듯이, 거울을 닦으면 대발과 발바리가 나타난다. 온세상은 그들에게 손가락을 보여준다. 그들도 그를 향해 손가락을 보여준다. 셋은 일지선 놀이에 푹 빠져 생각을 쉰다. 가끔 일지선의 변형도 곁들인다. 남이 보면 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동작이지만, 그들은 빙긋이 웃는다. 그저 웃어넘긴다. 손가락을 보여주는 행위의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다. 더욱이 웃는 행위에는 선악이 없다. 울어도 좋지만, 웃는 것이 자연스럽다. 울 때보다 웃을 때 근육이 덜 피로하기 때문에 ‘웃는 놈’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놈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일지선 놀이에 빠진 세 놈을 우연히 본 사람들이 흉내 내면서 일지선이 널리 퍼졌다. 형식이 화려하게 발달하면서 내용도 함께 발달했다. 사람들이 점차 일지선 놀이의 장점을 알게 되면서 슬기로운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널리 권장했다. 놀이에 입문하는 순서가 반드시 깨닫는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온세상·대발·발바리 중 하나가 발명한 놀이가 분명하지만, 그들보다 늦게 놀이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 셋보다 먼저 자성을 찾아 생로병사의 고뇌를 끊고 항상 행복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놀이인가. (중략) 요즘 사람들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노래한다. “저 언덕에 갔다더니, 어째서 왔느냐? 나를 데려다주러 왔느냐?” 듣는 사람이 화답한다. “생사와 열반이 어우러졌더라.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이니 이판사판역사판理判事判歷史判이로세.” - 「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