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부조리와 내면의 틈을 파고드는 고요하면서도 집요한 시선 박미윤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여섯 편의 단편을 묶었다.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탄탄한 서사를 구축하는 작품에서부터, SF적인 설정으로 현실을 비틀어 보이는 작품까지, 작가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여행을 떠나요’는 가상체험 캡슐이라는 장치를 통해 한 인물의 기억과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간다. ‘당신의 유토피아’는 중앙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계급화된 세계를 보여주면서 권력과 사랑의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울기 좋은 방’은 울기 위한 방이라는 설정을 통해 차갑고 현실적인 삶 속에서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서의 눈물이 가능한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조용한 외출’은 지극히 평범한 강춘생 할머니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노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중’은 평생 물질을 하다 노년에 치매를 앓게 된 어머니와 교수임용을 앞두고 농성장에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딸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어머니의 ‘바다 일’과 다르지 않을 ‘세상 일’의 이치를 끌어내고 있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주인공이 제주에 내려와 상처 많고 사연 많은, 그러나 강인한 해녀 삼춘으로부터 삶을 밀고 나가는 의지를 전해 받는 이야기다. 소설집 전반에 걸쳐 여러 장치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고 내면을 파고드는 시선이 느껴진다. ‘조용한 외출’이지만 그 집요한 시선은 닫아두었던 말과 기억을 되살리면서 돌아오는 길을 새롭게 하고 있다.